[priest]무오염, 무공해 무료분

무오염, 무공해 - 서장

blogqiye 2026. 1. 13. 14:46

무오염, 무공해 - 서장 : 15년 전

소년은 거의 꼬박 하루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침을 한 번 삼키자 목구멍이 녹슨 쇳조각처럼 까칠하게 긁혔고 비린 맛이 올라왔다. 눈앞은 간헐적으로 새까맣게 꺼졌다. 무엇을 밟았는지 발목에 힘이 풀리더니 소년은 신음 한 번 내지르지 못한 채 앞으로 고꾸라졌다.

곁에 있던 소녀가 사정없이 그의 멱살을 움켜쥐고 죽은 개를 끌듯 질질 끌어당겼다. 목이 졸릴 뻔했다. 소년은 바닥을 더듬어 한 손으로 짚으며 간신히 자세를 버텼다. 완전히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귀에 들리는 소리는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했고 마치 무언가 막 한 겹을 사이에 둔 듯 먹먹했다.

“너 왜 그래?”

“저…… 저 진짜……”

더는 못 뛰겠다는 말은 끝내 나오지 못했다.
말을 반쯤 뱉자 힘이 빠져버렸고 나머지 반은 숨이 가쁜 호흡에 휘말려 목구멍 근처에서 산산조각 났다.

“뭐라고?” 

소녀는 제대로 듣지 못하고 고개를 가까이 들이밀어 그의 턱을 들어 올렸다. 얼굴빛을 살피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저 사람들이 때렸어?”

“아…… 아니요.”

소년은 그녀가 제 몸을 두드리는 손을 힘없이 붙잡고 실낱같이 이어지는 숨소리로 말했다.

“…저, 저혈당이에요…… 누나……”

“아.”

그 호칭에 소녀는 잠깐 멈칫했지만 굳이 반박하지는 않았다. 열 살 남짓한 여자아이에게 나이는 아직 민감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어디선가 초콜릿 한 조각을 꺼냈다.

“자. 유통기한 지난 것 같긴 한데 다른 건 없어. 일단 이걸로 버텨.”

그 초콜릿은 세월의 풍파를 잔뜩 맞은 물건이었다. 몇 번이나 녹았다 굳었는지 모를 만큼 형체가 망가져 있었다. 소년은 덜덜 떨며 그것을 받아 들었다. 마치 끈적한 수의를 벗겨내는 기분이 들었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그는 억지로 입에 넣었고 그 안에서 짙은 세제 냄새를 느꼈다.
굶어서 저혈당이 오면 원래도 어지럽고 메스꺼운데 목까지 부어 삼키기 힘든 상태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초콜릿 덩어리는 목구멍에 걸려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은 채 달라붙었고 소년은 몇 번이나 헛구역질을 하며 눈물을 쏟았다.

“먹을 거 줬는데 왜 울어?”

“저…… 끅…… 우는 게 아니라…… 끅…… 못 삼키겠어요……”

“공주 전하.”

소녀는 노인처럼 한숨을 쉬며 그의 옆에 쪼그려 앉았다. 소년이 눈물을 닦을 때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가 물었다.

“야, 물어볼게 있어. 저 사람들이 왜 너를 납치했는지 알아?”

“모…… 모르겠어요.”

소년은 젖 먹던 힘까지 끌어 써서야 입안의 것을 겨우 삼켰고 그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전 그 사람들 처음 봤어요. 근데 차도 있고, 큰 개도 여러 마리 데리고 있었어요. 금방 따라잡을 것 같아요. 경찰에 신고해야 해요——누나, 연락할 수 있는 거 있어요? 제 휴대폰은 다 빼앗겼어요.”

“없어. 우리 동네에선 다 소리 질러서 부르는데.” 

소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너 설마 부잣집 도련님이야? 돈 뜯으려고 납치한 거 아냐?”

“아니요. 우리 부모님은 평범한 분들이에요.”

소년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돈 때문은 아닌 것 같아요. 사진도 안 찍었고, 가족한테 전화해서 몸값 요구도 안 했어요. 저를 납치한 건 조직이었는데, 일곱 명에서 여덟 명쯤 됐어요. 보통 납치·갈취를 하는 조직은 이렇게 규모가 크지 않아요. 인원이 많으면 이해관계 때문에 내부 갈등이 생기기 쉽고 조직을 유지하기 어렵거든요.”

조목조목 논리적인 데다 문어체까지 섞여 있었다. 소녀는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는 얼굴이었다.

“아, 그러셔?”

소년은 괜히 더 몸을 움츠렸다.

“……책에서 봤어요.”

두 아이는 인적이 거의 없는 곳에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다른 지역으로 빠지는 고가도로가 있었지만 이 시간에는 차가 한 대도 지나지 않았다. 주변은 텅 비어 있었으나 아마도 근처에 쓰레기 처리장이 있는지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넘어가는 밤바람에 역겨운 쉰내가 실려 왔다. 소년은 냄새에 목과 코가 따끔거려 본능적으로 헛구역질을 했고 곧바로 입을 틀어막아 참아냈다. 그는 옆의 소녀를 조심스레 힐끗 보았다. 혹시나 자신을 싫어할까 봐서였다.

소녀는 오래된 남성용 반팔 셔츠를 입고 있었다. 90년대 시골 면장들의 유행템이었다. 셔츠는 그녀에게 한참 커서 몸에 걸치면 마치 마대자루 같았지만 그 덕에 오히려 덜 촌스러워 보였다. 한쪽 어깨에는 청색 책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지퍼가 망가져 직접 안에서 밖으로 단추를 박아 고정해 둔 상태였다. 축 늘어진 끈은 마치 쓰레기통에서 주워온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지저분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가 느껴졌다.

“누나, 이 근처에 살아요?” 

소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로 가면 어른을 만날 수 있을까요?”

“몰라. 난 저 사람들 차 뒤에 매달려서 따라온 거야.”

소녀는 바닥에서 풀 한 포기를 뽑아 입에 물고 주변 지형을 살피며 계산하듯 말했다.

“너, 진탕 뒷골목(泥塘后巷)에서 잡혀간 거지? 아침밥 사러 지나가다가 봤어. 근데 진짜 손이 빠르더라. 그땐 사람 납치하는 줄도 몰랐어. 그냥 뭔가 이상해서 따라와 본 거야. 너 운 좋은줄 알아.”

소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소녀가 말을 이었다.

“근데 나도 묻자. 새벽부터 너 같은 꼬맹이가 왜 진탕 뒷골목 같은 양아치 소굴에 간 거야?”

소년은 벼락을 맞은 얼굴이 됐다.

“다…… 당신 혼자서?”

“응. 미안하지만 난 원래 응원단 데리고 다니는 취미는 없어서 등장 연출이 좀 부족했을 거야.”

“어른한테 말 안 했어요? 경찰에도 신고 안 하고?”

소년은 정신이 번쩍 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뭐… 차에? 어, 어디에 매달렸다고요? 떨어지면 차에 치여 죽을 수도 있잖아요, 게다가 만일 들키면……”

소녀는 그의 잔소리에 겨우 생각을 끊고 고개를 돌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신고는 무슨? 어디다 하라고? 진탕 뒷골목에서 파출소까지 뛰어가서 자초지종 설명하고 다시 뛰어왔어봐—— 중요한 건, 난 설명도 못 해—— 그렇게 왔다갔다하는 사이에 넌 이미 화장터 들어갔다가 나왔겠다. 얌전히 가서 네 ‘초등학생 행동 수칙’이나 외워. 계속 떠들면 누나가 진짜 울린다.”

“전 논리적으로 말하고 있는 거고요, 그리고 난 중학생이에요!”

소녀가 “풉” 하고 웃었다.

“가방끈 길어서 좋겠네, 그럼 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녀의 표정이 돌변했다. 그녀는 소년을 낚아채 길가 관목림 속으로 밀어 넣었다. 소년은 반사적으로 숨을 멈췄다. 그다음, 탁한 빛이 쓸고 지나갔다.
자동차 불빛이었다.

여러 대의 차가 동시에 접근했다. 텅 빈 밤공기 속에서 엔진과 배기관 소리는 유난히 위압적으로 울렸고 폭격기처럼 주변을 선회하다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멈췄다. 곧 바람을 타고 상스러운 욕설과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개를 끌고 추격해 온 것이다!

소년은 곁의 동료를 돌아봤다. 희미한 빛 속에서 그는 문득, 그녀가 자신보다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을 수도 있고 어쩌면 또래일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뺨과 턱에는 아직 젖살이 남아 있었지만 성장이 빨랐고 무엇보다 ‘주관’이 강해 성숙해 보였을 뿐이었다.
옆얼굴은 정면보다 덜 단정했다. 콧대에 약간의 매부리기가 있었고 진한 눈썹은 길게 위로 치켜올라 있었다. 세월이 아직 그녀의 얼굴을 다듬지는 못했고 뼈와 살도 완전히 자라지 않았지만 이미 길들지 않은 기질이 엿보였다.

“저쪽은 인원도 많고 차도 있고 개도 있어요. 우리 둘을…… 아니, 저를 잡는 건 쉬워요.”

소년은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빠르게 말했다.

“우린 갈라져야 해요. 제가 잡혀가도 누나는 절대 나오지 말아요. 근처에 분명 쓰레기장이 있을 거예요. 대형 쓰레기장 근처엔 분명 공중전화가 있을테니 가서 사람을 불러요.”

“나 전화카드 없어.”

소년의 관자놀이가 꿈틀거렸다.

“110은 무료잖아! 기본 상식도 없어요?” *

*110: 중국 경찰 전화번호. 한국의 112.

“아, 그러냐?”

소녀는 ‘새로운 걸 배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씹던 풀을 뱉고 침착하게 말했다.

“알겠어. 기회 되면 해볼게. 근데 오늘은 필요 없어——너 옷 벗어.”

“……뭐라구요?”

“벗으라고, 옷.”

그녀는 소년의 마른 가슴을 훑어보았다.

“가슴도 엉덩이도 없는 콩나물인데 내가 뭘 탐내겠어? 빨리 벗어, 밍기적대지 말고!”

그녀는 직접 손을 대려 했고 소년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 웅크렸다가 결국 항복했다—— 그는 모자 하나, 티셔츠, 트레이닝복 바지를 벗었고, 몸에는 팬티 하나만 남았다. 털 깎인 강아지처럼 초라하고 분하고 억울해 보였다.

소녀는 그를 보고 음흉하게 웃었다.

“네 팬티에 그려진 개랑 너랑 닮았다.”

“뭘 봐요!”

“따라와!”

그녀는 손짓을 하며 몸을 낮춰, 길가에 제멋대로 자란 관목을 이용해 민첩하게 움직였다.

소년은 처음엔 방향 감각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곧 완전히 상실됐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개 짖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텅 빈 거리 위로는 사람들의 발소리까지 섞여 들려왔다.

“이리 와!”

앞서가던 소녀가 손짓했다. 그제야 소년은 그들이 쓰레기장 가장자리에 도착했다는 걸 알았다. 앞에는 철조망이 있었다. 소녀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또다시 불빛이 스쳤다. 두 아이는 재빨리 쪼그려 앉았다. 그때 소녀의 시선이 소년의 운동화에 멈췄다— 유난히 튀는 디자인이었다. 양쪽 끈의 색도 묶는 방법도 달랐고 심지어 형광색이었다.

“신발도 벗어. 이따가 여기 넘어갈 거야. 빨리 움직여. 들키면 진짜 끝이야. 알아들어?”

“뭘 하려는 거예요?”

소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들어가면 제일 냄새 심한 데로 숨어. 해 뜰 즈음 쓰레기차가 오면 그 사람들한테 살려 달라고 해.”

“좋아요, 그럼 그쪽은 멀리 도망가요. 쓰레기장 냄새로도 제 체취를 완전히 가리진 못할 수 있으니까요.”

소년은 알몸으로 철조망 아래 웅크린 채 근거까지 들며 즉석 강의를 시작했다. 말이 기관총처럼 쏟아졌다.

“훈련된 마약 탐지견의 후각은 거의 단분자 수준에 가깝고 후각 세포 수는 인간의 30에서 50배에 달하는데 개의 절대 후각 역치는……엣취!”

소녀는 갑자기 손바닥만 한 분무기를 꺼내 그의 얼굴과 몸에 마구 뿌렸다. 물처럼 보였고 무색무취였지만 소년은 이유 없이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았다. 추격자에게 들킬까 봐 이를 악물고 참았다.

“세상에, 무슨 암기대왕 납셨네 혹시 인간녹음기냐?”

소녀는 그의 뒤통수를 한 대 치며 말했다.

“지금이야. 올라가!”

그녀의 말과 동시에 날카롭고 흉포한 개 짖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바로 코앞 같았다. 소년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말을 따랐다. 전력을 다해 철조망을 타고 올라갔고, 뛰어내리다 맨발이 어딘가에 긁혔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허둥지둥 일어나 철조망 너머의 소녀를 바라보며 외쳤다.

“당신도 빨리……”

소녀는 그가 벗어둔 옷으로 간단한 망을 만들고, 신발과 양말을 한데 담았다. 그리고 그의 야구 모자를 자기 머리에 눌러썼다.

소년은 멍해졌다가, 곧 무언가를 깨달았다.

“잠깐만, 뭐 하려는 거예요?”

소녀는 돌아서서 휘파람을 불었다.

“앞으로 진탕 뒷골목 같은 쓰레기 같은 데엔 쓸데없이 가지 마. 착한 애 혼자 다니다간 큰일 난다. 넌 도망가. 누님은 간다.”

“당신……”

소년은 다급히 철조망 앞으로 달려가 손을 뻗었지만 그 순간 또다시 불빛이 스쳤다. 그는 반사적으로 쓰레기통 뒤에 몸을 숨겼다. 그러나 소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빛이 그대로 그녀의 얼굴을 훑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돌려 눈을 가늘게 뜨고 입꼬리를 올려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어딘가 사나운 기운이 배어 있었고 동시에 갓 태어난 송아지가 호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 듯한 위태로운 흥분도 엿보였다.

그녀는 몇 걸음 물러서며 모자의 챙을 눌러쓰고 검지를 입술 앞에 세웠다.

“쉿——”

손전등 불빛 아래에서 그 얼굴이 또렷이 드러났다. 모자가 눈매를 가려 날카로운 코끝과 다소 공격적인 입꼬리만이 남았다. 마치 짙은 노을 한 덩어리가 그의 망막에 뜨겁게 새겨진 듯했다.

그리고 그 ‘노을’은 바람을 타고 그의 눈앞을 스쳐 지나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