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오염, 무공해 - 제1장 : 진탕 뒷골목(泥塘后巷)
‘진탕 뒷골목’은 거리 이름이 아니다. 개미굴처럼 뒤엉킨 좁은 골목들이 한 덩어리로 모여 있는 구역을 통칭하는 말로 본래 이름은 ‘작은 연못(小水塘)’이었다. 지대가 낮아 비만 오면 물이 고이고 길가 벽 모퉁이마다 미끄러운 이끼가 끼어 있었다. 가끔 습기가 차오르며 비린내 비슷한 냄새가 올라오기도 했다.
과거에는 깡패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는데 소매치기 패거리, 보험사기단, 인신매매범…… 종류도 다양했다. 한밤중에 경찰이 들이닥쳐 타 지역을 돌며 범행을 저지르던 살인범 무리를 통째로 끄집어낸 적도 있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이 근처를 피해 다녔고 그러다보니 ‘작은 연못’은 어느새 ‘진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로부터 15년이 흘렀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IC 공중전화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때 악명 높던 ‘깡패 소굴’ 진탕도 몇 차례 강력 단속을 거치며 꽤 “맑아졌다”.
그 시절 기세등등하던 늙은 양아치들 중에는 죽은 사람도 있고 불구가 된 사람도 있고 도망자 신세로 떠도는 사람도 있고 ‘철창의 눈물’*을 부르며 감옥에 간 사람도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간신히 중년까지 살아남았지만, 둘러봐도 남은 건 아무것도 없어 고개를 숙인 채 평범한 삶을 살게 됐다.
*철창의 눈물(铁窗泪): 1980년대 중국의 가수 겸 배우인 지즈창(迟志强)이 수감 경험을 바탕으로 부른 노래
지금의 진탕 뒷골목도 여전히 어수선하다. 불법 노점상들이 몰려 있고 술 마시다 주먹질하는 사건도 가끔 벌어진다.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비교적 평화롭다. 여름이 되면 매일 저녁 여섯 시 이후 이곳은 야외 바비큐 구역으로 변한다. 고추와 쯔란 향이 바람에 날리고 십삼향(十三香, 향신료)이 천하를 제패하며 화기애애하면 재물도 따른다는 연기와 불빛의 기운이 골목을 채운다.
유리문 하나가 옆집 마라 샤오룽샤(小龙虾, 민물가재요리)의 냄새를 막아 주고 있었다. 열다섯 살 소년 류중치(刘仲齐)는 그 유리문에 등을 기댄 채 플라스틱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온라인에 글을 올렸다.
「‘별자리 운세(星座指南)’를 성경처럼 떠받드는 지적장애인 여친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
곧 한가한 네티즌이 답을 달았다.
「몰라. 난 여친은 없고 건강보조식품을 밥처럼 먹는 지적장애인 애비는 하나 있다. 바꿀래?」
류중치는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칠공에서 가늘게 홧병이 새어 나오는 걸 느꼈다. ——그의 어린 여자친구 바이웨(白悦)는 이미 소품샵의 ‘점성술사’와 십 분째 수다를 떨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당신이 좀 대충대충인 사람처럼 보일 수 있어요. 아무 생각 없는 것 같고요.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죠. 당신 안엔 굉장히 강한 승부욕이 있어요. 한 번 마음먹으면 ‘아예 안 하든가, 할 거면 제대로’라는 자존심이 있는 타입이에요.”
이른바 ‘점성술사’는 사실 사람 속이는 여사기꾼이었다. 약간 쉰 듯한 허스키 보이스에 과하지 않은 홍콩·대만 억양이 섞여 있었다. 목소리는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듯 아래로 내려앉지 않아 듣고 있으면 영 수상하고 미심쩍었다.*
*중국에서 홍콩,대만 억양은 꾸며낸 연기톤 같은 이미지.
“당신은 황도 12궁 제1궁의 수호 아래 태어난 소녀예요. 저는 당신 가슴에서 밝은 불꽃 하나를 봤어요.”
그 대사를 듣고 류중치는 번개 맞은 듯 몸을 떨었다.
‘이 사이비가 뭔 헛소리야?’
“그 불꽃은 당신의 가장 근원적인 생명 에너지예요.”
점성술사는 허공에서 바이웨의 가슴을 콕 집듯 손짓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불은 제어하기 어렵죠. 너무 타오르면 사람은 쉽게 성급해지고 앞뒤 안 재고 덤벙거리게 돼요. 인간관계에서도 가끔 너무 직설적으로 말해서 나중에 스스로도 ‘아, 말 실수했구나’ 하고 후회하죠. 맞죠?”
“맞아요 맞아요! 저 진짜 좀 직설적인 편이에요!”
류중치는 눈을 굴렸다.
‘봐라, 이제 물건 사라고 할걸.’
점성술사는 무지한 소녀를 낚기 시작했다.
“그럼, 스스로를 조금 바꿔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있나요?”
‘거봐!’
류중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있어요!”
바이웨—뇌 진화에 실패한 이 여학생—는 미끼를 문 데서 그치지 않고 찌까지 통째로 삼켰다.
“그럼 탄생석 세트 하나 사면 어떨까요? 팔찌랑 목걸이 같이요. 도움이 될까요?”
“……”
류중치는 할말을 잃었다.
‘요즘 등신들은 이 정도까지 잘 속는다니!’
류중치는 시립 제3고급중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마침 여름방학이었다. 개학하면 고2로 올라간다. 3중은 진탕 뒷골목과 같은 행정구역에 있고 거리는 3km도 안 된다. 자전거 타면 십여 분 거리다.※
이런 명문 중학교의 ‘착한 아이들’에게 진탕은 학교와 부모가 누차 가지 말라고 당부하는 곳이었고 그래서 오히려 자극을 찾아 방문하는 성지가 됐다. 가끔 한 번 와서 샤오롱샤 두 근 사먹고 불법 인터넷 카페에서 게임 좀 하다 해적판 책 몇 권 사면 마치 ‘사회물’을 살짝 묻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걸로 사춘기 특유의 소소한 반항심을 풀고 공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셈이었다.
류중치도 어린 여자친구에게 끌려 나와 이 ‘탐험’을 하게 된 것이다.
둘은 먼저 연기 자욱한 인터넷 카페에 한 번 질식할 뻔했고, 이어 야외 바비큐 거리에서 콧구멍이 시커멓게 될 정도로 연기를 들이마셨다. 심장과 폐가 한 차례 고문을 당한 뒤, 우연히 ‘별의 꿈(星之梦)’이라는 소품샵을 발견했다.
이 가게는 냄새도 안 났고 향초를 한 다스나 켜 두고 있었다. 은은한 조명이 어디서 도매로 떼 왔는지 모를 잡동사니들을 그럴듯하게 비추고 있었고 집시 차림의 ‘점성술사’가 수다 상대까지 해주고 있었다.
‘점성술사’는 몇 마디 만에 바이웨를 완전히 홀려 놓았다. 이것도 사고 싶고 저것도 사고 싶어 하더니 자기만 기쁜 마음으로 호구가 되려는 게 아니라 남자친구까지 챙겼다.
“류중치 너 8월 말생이지? 그럼 처녀자리 하나 사 줄까? 커플용으로!”
“됐어.”
류중치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난 열 오르면 곽향정기수 한 병이면 돼.”*
*곽향정기수(藿香正气水): 활명수 같은 중국 국민상비약
바이웨 공주는 즉각 불만을 터뜨렸다.
“너 왜 이렇게 분위기를 깨?”
류중치는 아예 팔짱을 끼고 냉소했다.
“분위기 깨는 게 아니라 상식 교육을 하는 거야, 바이웨 학우. 지금 여기서 네가 어떻게 속고 있는지 분석해 줄게. 네가 들어오자마자 저 인간은 네가 4월생이라는 걸 알았어. 왜냐고? 네가 탄생석 앞에서 펄쩍펄쩍 뛰면서 4월 돌을 가리키고 ‘이거 내 거야’라고 세 번이나 말했거든.”
“그리고 네가 양자리인지 황소자린지 어떻게 알았을까? 자매님, 네 쓸모없는 머리 위에 양자리 머리핀이 꽂혀 있잖아.”
“성격을 왜 그렇게 잘 맞히느냐고? 그건 ‘바넘 효과’*라는 게 있어서고 또 네가 별자리 믿는다는 걸 아니까 그냥 바이두 백과에 나온 양자리 설명을 한 번 읽어 주면 넌 운명을 꿰뚫어본다고 느끼는 거야.”
*바넘 효과(Barnum Effect):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이고 모호한 성격 묘사를 마치 자신에게만 특별히 해당하는 맞춤형 설명처럼 받아들이고 믿는 심리 현상
“그리고 네가 ‘솔직하고 직설적’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류중치는 멋들어진 마무리 멘트를 날렸다.
“멍청이들은 다 그렇거든. 그게 뭐 추측할 일이겠냐?”
이렇게 멋을 부리던 소년은 ‘조기 연애 선봉대’에 입대한 지 두 달 만에 당당히 솔로 부대로 복귀했다.
“지금 안 쫓아가면 내일부턴 여자친구가 없을 텐데요.”
사기꾼 점성술사는 멘탈이 대단히 안정적이었다. 미소를 띠고 두 사람의 싸움을 끝까지 지켜보더니 장사가 엎어져도 화내지 않고 아까 바이웨가 꺼내 본 소품들을 느긋하게 정리했다.
류중치는 성질이 나 그녀를 노려봤다.
“댁 장사나 신경 써요.”
“장사는 인연이죠. 오늘은 인연이 안 닿았을 뿐이에요.”
점성술사는 담담히 말하며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나중에 고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요. QR 찍고 위챗 추가하면 돼요.”
‘QR 찍고 위챗 추가’라는 대사가 너무 현실적이라 홍콩·대만 억양이 순식간에 깨져 버렸다.
확고한 유물론자인 류중치는 비웃어 줄 말을 찾으려다 그녀가 태연하게 덧붙이는 말을 들었다.
“학업이든 연애든, 처음 세 번은 무료예요. 가족 관계도 상담 가능해요. 예를 들면…… 성격 나쁜 형이나 누나가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은 거요.”
류중치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당신 나 알아?”
“아뇨.”
점성술사는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제 수법 다 안다면서요. 그럼 맞혀 보세요. 제가 어떻게 알았을지.”
그녀는 키가 컸고 피부는 아주 희었다.—다만 예쁜 여자 특유의 생기 있는 흰빛이 아닌 햇빛을 오래 못 보고 곰팡이처럼 우러난 창백함에 가까웠다. 차갑고 윤기가 없었고 관자놀이 근처엔 푸르스름한 혈관이 비쳤다— 순흑색의 긴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로 얼굴 절반을 가린 채 과장된 장신구를 달고 있어 몹시 말라 보였다. 바람 한 번 불면 그대로 날아갈 것 같았다.
외형만 놓고 보면 이 여자는 묘하게 수상쩍은 신비주의 분위기가 있어서 귀신 흉내를 내며 사람 속이기엔 딱 알맞아 보였다.
그녀는 명함을 류중치 손에 쥐여 주며 우아하게 허리를 숙였다.
“다음에 또 오세요.”
류중치는 홀린 듯 명함을 받았다. 가게를 나와 몇 미터쯤 가서야 ‘내가 미쳤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참지 못하고 명함을 집어 들었다.
“간…… 칭(甘卿).”
진짜 이름인지 가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류중치가 뒤돌아보니 별의 꿈 가게 앞에 불이 켜져 있었다. 은은하고 고요해서 묘하게 수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때 골목 안 사람들이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서로 밀치며 길가로 몰려들었고 류중치는 누군가에게 떠밀려 벽 모퉁이에 처박혔다. 짜증 나서 고개를 들자 골목 한가운데에 널찍한 공간이 비어 있었고 옆에서 누군가 흥분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온다, 온다.”
곧이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의자 몇 개가 대로로 날아갔고 서너 명의 양아치들이 옆 바비큐집에서 회오리처럼 튀어나와 욕설을 퍼부으며 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난무해 누가 누구 편인지도 분간이 되지 않았다.
구경꾼들은 신이 나 있었다. 그중 한 구경꾼은 보기만으론 성에 안 찼는지 목청껏 소리쳤다.
“우오오—— 쩐다!”
“……”
류중치는 할말을 잃었다.
‘이 사회의 쓰레기들 같으니!’
이 좋은 여름방학에 집에서 수학 문제집이나 더 풀지 여기서 어슬렁거리다니. 진짜 제정신이 아니다!
류중치는 신경질적으로 밖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좀 지나갈게요……”
거의 ‘탈출’할 뻔한 순간, 누군가에게 떠밀린 할머니 한 분이 비틀거리며 튀어나왔다. 머리는 새하얗고 등은 삶은 새우처럼 굽어 있었으며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다들 눈이 먼 것처럼 불량배들의 싸움만 보고 있었고 느구도 부축하지 않았다.
꽤 세게 넘어진 모양인지 할머니는 한참을 버둥대다 일어나지 못하고 신음하며 근처에 있던 류중치에게 손을 내밀었다.
류중치가 멈칫하며 다가가려는 순간, 누군가 그의 드러난 팔을 붙잡았다.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손가락은 가늘고 길었지만 검지와 중지가 묘하게 휘어 있었다. 예전에 다친 건지 아니면 지나치게 말라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으나 왠지 황량한 들판의 무덤에서 뻗어 나온 마른 가지를 떠올리게 했다.
고개를 돌린 류중치는 그를 붙잡은 사람이 다름 아닌 ‘별의 꿈’의 그 사기꾼 점성술사라는 걸 알아봤다.
점성술사는 목소리를 낮췄다. 홍콩·대만 억양도 완전히 사라진 채 빠르게 말했다.
“소년, 오늘 인당이 검어요. 큰 화가 있을 징조니 쓸데없는 일엔 끼지 말고 얼른 집에 가요.”*
*인당이 검다(印堂发黑): 미간이 검다. 관상에서 가까운 장래의 길흉을 보는 부위. 큰 화를 당할 징조라는 뜻.
서양 점성술이랑 전통 관상, 이 두 개가 콜라보도 되나?
류중치는 속으로 생각했다.
‘뭔 헛소리야?’
이 시대의 모범 청소년은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레이펑 선배의 발자취를 따라 할머니에게로 향했다.*
*레이펑(雷锋): 중국 모범 청년의 상징.
……그리고 소년은 아주 빠르게 ‘재사회화교육’을 받았다.
주제는 ‘어른 말 안 들으면, 자다가도 코베인다.’
선행을 베푼 류중치는 넘어진 할머니를 일으켜 세우고 지팡이도 주워 주었다. 할머니가 허리를 두드리며 집이 멀지 않다고 하자 그는 아무 의심 없이 부축해 주며 그녀가 가리키는 대로 따라갔다. 그렇게 시끌벅적한 진탕 뒤골목을 빠져나왔을 즈음,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인적 드문 막다른 골목이었다. 거기서 매복하고 있던 세 명의 거물급 깡패가 그를 둘러쌌다.
아까까지만 해도 불쌍해 보이던 할머니는 땅바닥에 털썩 앉더니 다리를 꼬고 앉아 기세 좋게 외쳤다.
“바로 이놈이야! 나를 밀쳐 넘어뜨려서 이 할미 다리가 부러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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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학제는 6-3-3이고 고급중학교가 한국의 고등학교입니다. 류중치는 고등학생!
초등학교=소학교(小学)
중학교=초급중학교(初级中学)
고급중학교=고등학교(高级中学)
중고등학교 모두 중학교라고 불러서 이 소설에서도 고등학교를 모두 ○○중이라고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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