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est]무오염, 무공해 무료분

무오염, 무공해 - 제2장

blogqiye 2026. 1. 13. 16:24

무오염, 무공해 - 제2장 : 군자여란의 ‘란’, 해납백천의 ‘천’(君子如兰的“兰”,海纳百川的“川”)*
*군자여란(君子如兰): 군자는 난초와 같다. 해납백천(海纳百川): 모든 강을 품는다. 모두 품성이 고결하고 마음이 넓다는 의미.

개발구.

도로변에 업무용 차량 여러 대가 일렬로 서 있었다. 맨 앞 차에서 뚱뚱한 남자가 내리더니 잰걸음으로 달려가 뒷차 문을 정성스럽게 열어 주었다.

“여깁니다. 보시다시피 주변은 다 새로 닦은 도로고요. 앞에 펜스 쳐 놓은 저 땅이 오늘 설명드릴 곳입니다. 정말 좋은 프로젝트예요! 원래라면 제 친구도 자금이 이렇게 빠듯하면 진작 손을 뗐어야 하는데 너무 아까워서 말이죠. 지금 초기 자금만 들어가서 프로젝트 등록만 되면 바로 대출이 나오고요. 그다음부터는 진짜 누워서도 돈을 벌 수 있는……”

차에서 내린 투자사 측 책임자는 듣기론 부사장이라고 하는데 마흔 살 전후로 보였고 예의 바르면서도 거리를 두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는 가볍게 말을 끊었다.

“왕 사장님, 타당성 보고서랑 상세 계획은 이미 다 봤습니다. 굳이 다시 강조 안 하셔도 돼요. ——란촨, 와서 한 번 봐.”

뚱뚱한 남자는 웃음을 유지한 채 막 내린 젊은 남자에게 시선을 옮겼다.
키가 훤칠하고 단정한 인상이었다. 연회색 셔츠에 가는 금속테 안경을 썼는데 도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렌즈가 유난히 얇아 보였다. 얇은 건 렌즈만이 아니었다. 입술도 얇고 콧방울은 좁고 곧았으며 턱선은 조각처럼 깎여 있었다. 심지어 눈꺼풀마저 남들보다 얇아 보일 정도였다. 키가 커서 사람을 볼 때면 살짝 눈을 내리깔게 되는데 그 시선이 눈꼬리에서 흘러나오며 어딘가 웃는 듯 마는 듯했다.

뚱뚱한 남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본좌는 일대의 허세왕이다’하는 기세에 허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본능적으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위란촨(喻兰川)입니다. 군자여란의 ‘란’, 해납백천의 ‘천’.”

투자사 부사장이 위란촨을 가리키며 반쯤 농담 반쯤 진담으로 말했다. 

“우리 리스크관리부 책임자예요. 젊다고 얕보면 안 됩니다. 이분이야말로 진짜 결정권을 쥐고 있어요. 저희 대주주가 워낙 신중해서 회사에서 권한이 제일 센 부서가 바로 리스크관리부입니다. 우리가 밖에서 아무리 뛰어다녀도 이분이 보고서 한 장 쓰는 것만 못해요.”

뚱뚱한 남자는 바로 태세를 전환해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아부를 퍼부었다.

“위 총, 역시 젊은 인재십니다, 젊은 인재!”*

*총(总): 임원급 이상의 경칭. 직급 높은 어르신들 대충 다 총이라고 함.

허세왕…… 위 총께서는 들고 있던 태블릿을 덮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짧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위 총께서 이쪽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뚱뚱한 남자가 손을 비비며 말했다. 

“요 몇 년 사이에 우리 옌닝(燕宁) 발전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아십니까. 여긴 십수 년 전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는데 지금은 도심에서도 다시 나올 수 없는 땅이죠. 제가……”

“잘은 모릅니다. 한 번 와 본 게 전부입니다.”

위란촨은 상대가 숨을 고르고 본격적인 장광설을 늘어놓으려는 찰나 정확한 타이밍에 말을 끊었다. 뚱뚱한 남자는 말문이 턱 막혔다.

“예전엔 허허벌판이 아니라 쓰레기 매립장이었죠.”

뚱뚱한 남자의 눈빛이 번쩍였다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아, 역시 아시네요! 제가 바로 그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요. 이 프로젝트의 장점이 바로 그 점입니다. 매립장 재개발이죠. 토지 재활용입니다. 지금은 기술이 아주 좋아져서 쓰레기를 분쇄하고 압축하면 안정성도 높고 주변 환경에도 좋습니다. 국가에서도 장려하는 사업이에요. 개발사 쪽에서도 이걸 핵심 포인트로 잡아서 정책적 지원도 좀 받아낼 수 있을……”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왕 사장님.”

위란촨은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알기로는 생활 쓰레기 전용 매립장이라 냄새가 심했고 액체나 유해 물질이 지하로 스며들었을 가능성도 큽니다. 분해 주기가 아주 긴 물질도 많고요. 지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데 사장님 계획대로라면 기초 공사에 문제는 없겠습니까?”

뚱뚱한 남자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슬그머니 요점을 피했다.

“그… 그건 당연히 문제 없습니다. 친구 쪽에서 이미 프로젝트 법인도 세웠고 방안은 전문가 검증도 다 거쳤습니다. 기술적인 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지금 어려운 건 주로 자금 문제라서요……”

위란촨은 고개를 숙여 웃으며 공손하게 말했다.

“누군들 안그럴까요? 올해는 자금 사정이 다들 어려우니까 더 조심해야죠. 안 그렇습니까?”

“암요, 암요……”

뚱뚱한 남자는 겉으로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위란촨의 등 뒤를 향해 차가운 눈빛을 꽂았다. 마음속으로 그가 벼락 맞기를 진심을 담아 기원하면서.

그런데 바로 그때, 위란촨은 마치 등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미처 거두지 못한 시선과 정확히 마주쳤다.

“왕 사장님, 저한테 하실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뚱뚱한 남자는 깜짝 놀라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마침 투자사 쪽 사람이 분위기를 풀었다.

“우리 란촨은 특기가 하나 있습니다. 누가 자기를 보고 있으면 바로 느껴요. 신기하죠? 왕 사장님께서 우리 같은 중년들 보다가 질려서 젊은 미남만 보신 거겠죠.”

뚱뚱한 남자는 억지로 몇 번 웃었고 그 뒤로는 끝까지 헛소리를 하지 못했다.

일행이 효율적으로 현장 조사를 마친 뒤 7인승 업무용 차량은 개발구를 떠나 고층 빌딩이 늘어선 업무지구(商务区, CBD)로 향했다.

“이건 보고서 안 쓰겠습니다. 회의에 올릴 가치도 없어요.”

회사로 돌아오는 길, 위란촨은 태블릿을 운전기사에게 넘기며 동행했던 부사장에게 말했다.

“왕 씨는 못 믿겠습니다. 이쪽저쪽 기웃거리는 건달이에요. 아마 먼저 개발사엔 ‘나한테 좋은 프로젝트가 있는데 자격이 당장 안 나와서 그렇다. 초기 자금은 내가 대고 너희는 경자산으로 팀만 파견해서 이름만 빌려 달라. 리스크는 없으니 같이 돈 벌자’고 했을 거고, 투자자한테는 ‘개발사는 대형 브랜드고 프로젝트는 탄탄하다. 이번엔 자금줄이 끊어져도 이 땅을 못 놓겠다고 버티다가 운 좋게 돈이 부족해서 우리한테 기회가 왔다’고 했겠죠. 양쪽 다 속여서 자금이 들어오고 프로젝트가 등록되면 한몫 챙겨서 나르는 겁니다. 말 그대로 날로 먹겠다는 거죠.”

“너 이놈, 말하는 거 보소.”

부사장은 웃다가 의미심장하게 그를 한 번 바라봤다.

“건달도 쓸모는 있는 법이야. 어쨌든 리 총 친구 소개로 온 사람인데 그 얼굴 봐서라도 이 정도는 와 줘야지. 일이라는 게 동료 체면이나 인간관계 때문에 귀한 시간을 좀 희생하고 헛수고를 하는 일도 다반사 아니겠나.”

위란촨은 웃기만 하고 대꾸하지 않았다.
요즘 회사 안에서는 대주주가 은퇴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룹은 아직 조용했지만 회사의 몇몇 부사장들은 이미 닭싸움이라도 하듯 서로 견제하며 눈에 독을 품고 있었다. 모두가 리스크관리부라는 큰 칼을 들고 상대의 머리를 베고 싶어 했다. 그 바쁜 칼인 위란촨은 피비린내 나는 싸움판 한가운데서 한 달째 주말도 쉬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몸을 살짝 틀어 동료들을 위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저는 회의실에서 몇 건 더 보고 갈게요. 다들 먼저 올라가세요.”

“위 총 고생 많으십니다.”
“유능한 사람이 더 일하는 거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위란촨은 미소를 거두고 담담한 얼굴로 회의실 쪽으로 걸어갔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비서가 따라붙어 커피 한 잔과 서류 묶음을 건넸다. 위란촨은 훑어보고는 다시 돌려주었다.

“볼 시간 없어요. 말로만 요약해 주세요.”

훈련이 잘된 젊은 비서는 즉시 낮은 목소리로 내용을 보고했다. 위란촨은 말없이 들었다. 반대편에서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며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윤이 나는 대리석 바닥 위로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녀들이 바쁘게 오갔다.

사회적 고정관념에 따르면 머리는 새 둥지처럼 헝클어지고 얼굴엔 기름기가 번들거리며 배달 음식으로 연명하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우울한, 도태될 실패자들이다. 반대로 맞춤 정장을 입고 매일 CBD를 가로지르며 전화를 끼고 다니는 사람들은 전도유망한 도시 엘리트들이니 뒤에 벌떼처럼 들러붙는 연애 상대들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찌질한 집돌이’가 사실은 철거 보상으로 집 여러 채를 가진 임대업자일 수도 있고 ‘도시 엘리트’는 매달 통장 잔고가 바닥나는 집 없는 월급 노예일 수도 있다. 향수는 샘플로 쓰고 월말마다 끼니 걱정을 하며 밤낮없이 야근하다가 ‘과로사’ 기사에 심장을 얻어맞는 그런 사람.

세상일은 무상하고 알 수 없다.

이를테면 이미지도 분위기도 차갑기 그지없는 위란촨이 바로 그런 겉은 번지르르하고 속은 빈곤한 ‘도시 엘리트’였다.

한여름 금요일 저녁, 하루 종일 쉼 없이 돌아다닌 위란촨은 마지막 남은 기운을 쥐어 짜 네 시간짜리 화상 회의를 겨우 끝냈다. 머릿속이 ‘웅웅’ 울렸다. 살을 에는 중앙 냉방 바람 속에서 사무실로 돌아와 문을 닫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메일함에는 읽고 결재해야 할 문서가 또 한 묶음 쌓여 있었지만 하나도 열어 보고 싶지 않았다. 그냥 집에 가서 시체처럼 눕고 싶을 뿐이었다.
메일을 넘기다 보니 전날 도착한 ‘읽지않음’ 메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제목을 보자 마음이 더 서늘해졌다. ——은행에서 보낸 신용카드 결제 안내였다.

위란촨은 뜨거운 차 반 잔을 들이켜 속을 데운 뒤에야 자신의 ‘개인 재무 관리표’를 열었다.
‘시간 관리’, ‘재무 관리’, ‘건강 관리’ 이 세 가지는 모두 엘리트의 기본 옵션으로 하나라도 빠질 수 없다. 가지런한 표들은 마치 안전벨트 같아서 인생을 그 안에 끼워 넣기만 하면 리듬을 통제하고 마구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위 씨의 재무 관리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항목은 단연 ‘주택담보대출’이었다.

집은 현대 청년의 요괴 감별 거울이다.
집을 사기 전엔 다들 스스로를 비범하다고 여기며 언젠가는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고 믿는다.
집을 사고 나면 그 ‘천신’들은 일제히 인간 세상으로 강등돼 돼지우리의 둘째사형이 된다.

위란촨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올해 초 집을 샀다. 집을 보러 다닐 때는 도심의 이 빠진 '노후 소형 주택'들에 눈이 멀 뻔했고 외곽 지역에서는 길을 잃을 뻔했다. 도대체 이 많은 집 중에 사람이 살 만한 집은 하나도 없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러다 곧 깨달았다. 문제는 시장이 아니라 돈은 없고 요구는 많은 자기 자신이었다.

수많은 타협 끝에 그는 그럭저럭 참을 만한 집 한 채를 골라 전 재산을 털어 계약금을 내고 영광스러운 ‘하우스푸어 인생’에 입문했다.

매달 대출금은 거의 2만 위안, 기간은 30년.

유기징역 최고형도 25년이다.
은행은 감옥보다 더 독했다.

더 악랄한 것은 그를 빈털터리로 만든 이 ‘호화 주택’이 아직 1년 넘게나 지나야 입주 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그는 매달 대출금을 갚는 동시에 7천 위안이 넘는 월세도 내야 했다.
거기에다 이번 주의 큰 지출만 해도 하반기 주차비 8천5백 위안, 두 건의 ‘결혼세’ 2천 위안, 그리고 하필 이 타이밍에 장례를 치르게 만든 옛 상사의 어머니까지…….

위란촨은 한동안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허리를 짚어 보니 하루하루 버티는 신장이 덜덜 떨리는 것 같았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자 이름은 ‘시엔위(咸鱼)’였다.*

*시엔위(咸鱼): 짠물고기,말린생선=탕핑족… 한국으로 치면 폐급,잉여 정도의 의미. 우리나라 번장과 같은 중고거래 앱 시엔위(闲鱼)와 발음이 같습니다.

'짠물고기' 시엔위의 본명은 위옌(于严)으로 위란촨의 초등학교 동창이다. 당시 담임은 표준어가 서툴러 ‘위(于, yú)’와 ‘위(喻, yù)’를 구분하지 못했고 둘이 형제냐며 놀리곤 했다. 그렇게 성격도 성향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은 어쩌다 보니 붙어 다니는 죽마고우가 됐다.

위옌의 꿈은 평생 진짜 짠물고기로 사는 것이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꿈이 있는 사람은 짠물고기가 될 자격이 없다는 말처럼 그는 어쩌다 보니 인민경찰이 되었다. 맡은 일은 잔소리 수준의 소소한 사건들이었지만 그래도 늘 발이 땅에 닿지 않을 만큼 바빴고 한동안 위란촨을 괴롭히지도 못했다.

“할 말 있으면 하고 없으면 꺼져.”

위란촨은 친구 앞에서는 이미지 관리 같은 걸 하지 않았다. 그는 반쯤 죽은 목소리로 단칼에 말했다.

“술 안 마셔. 약속 안 나가. 안 가.”

“잠깐만, 란예(兰爷), 네 동생이 지금 내 손에 있어.”

“아.”

위란촨은 무표정하게 콧등을 눌렀다.

“동생 판매합니다. 한 마리에 만 원, 네고 안 받음. 알리페이로 보내. 걘 오늘부터 네 동생이다.”

“장난치지 마! 우리 집 아니고 파출소야!”

“흥”

위란촨은 짧게 코웃음을 쳤다.

“걔가 뭘 했는데?”

위옌은 의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인간아, 형이라는 게 하루 종일 좋은 꼴 좀 상상 못 하냐? 착한 애야. 길에서 할머니를 부축했는데 그 할머니가 일부러 넘어졌어. 마침 신고한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깡패들한테 맞을 뻔했다고!”

“그게 착한 거냐?”

위란촨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건 그냥 멍청한 거지.”

“……”

“그리고 ‘맞을 뻔했다’는 건 결국 안 맞았다는 거잖아. 나 아직 일 좀 있어. 거기서 기다리라 해.”

그는 만년필에 뚜껑을 딱 닫았다.

“밥이나 먹여. 나중에 내가 비용 처리해 줄게.”

“야 이 인간말종아, 너……”

인간말종 위 씨는 이미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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